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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장 한니발을 만나보기 위해서는

기원전 264년부터 130년간 지속된

로마와 카르타고의 전쟁 이야기를 들어봐야 한다. 

 

 

   로마와 카르타고는 전라 경상도를 합친 정도의 크기인

시칠리아 섬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

전쟁을 하게되는 이야기를 들어보자.

 

 1차 포에니 전쟁의 발발

   시칠리아 섬의 메시나가 시라쿠사의 공격을 받아 자력으로 살기가 어려워지자 로마에게 도움을 요청하여 로마가 메시나의 요청을 받아들여 1만 7천명의 병력을 급파하면서 시라쿠사는 물론 시칠리아 섬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던 카르타고까지 참여하는 전쟁이 시작된다.

   우리나라로 치면 동학혁명이 일어나자 청나라 군인들과 일본이 군대를 파견하여 우리나라가 청일전쟁의 희생물이 되듯이 시칠리아섬을 중심으로 로마와 카르타고가 전쟁을 시작하는 것이다.

   로마가 나타나자 메시나를 공격하던 시라쿠사는 로마와 강화조약을 체결한다. 로마는 시라쿠사를 독립을 존중하면서병력을 제공할 의무도 지우지 않은채 로마연합군으로 받아 들인다. 

   그러나 이에 위기를 느낀 카르타고가 병력4만이 넘는 대군으로 시칠리아 섬으로 진격하게 된다. 로마와 정면으로 부딫치게 된것이다. 이것이 130년간 지속된 포에니 전쟁이 시작되는 것이다. 

   본래 해군이 강해서 지중해의 패권을 쥐고 있던 카르타고를 상대로 육지의 농경문화가 위주인 로마가 새로이 군함을 만들고 해군을 양성하여 1차 해전부터 시작해서 카르타고를 격파하며 시칠리아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던 카르타고를 차차 내몰고 시칠리아 섬을 전체다 차지하게 된다.

   카르타고와 로마의 해전장면을 보면서 우리나라의 이순신 장군이 생각난다. 대포를 개발해서 주로 원거리에서 대포를 쏴서 1차 가격을 하고 근접전에서는 새로이 만든 거북선으로 왜적이 거북선에 올라오는 것을 막는등 여러가지 전략과 전술로 20전 20승을 거둔것이 생각난다. 

 

포에니 1차전쟁에서 사용된 해군력

   로마연합군은 노잡이가 3단층인 갤리선을 사용하고 있었으나 카르타고는 5층짜리 갤리선을 120척이나 운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사실을 알게된 로마는 곧바로 5층선을 모방하여 건조하기 시작했고 해군을 훈련시키기 시작해서 5단층 갤리선 100척을 만들어서 3단층 갤리선 200척과 합해서 로마 최초의 로마연합 해군이 만들어진것이다.

 

   

그러나 카르타고와 로마연합군이 1차 해전을 붙었을때 카르타고 군선의 수는 로마의 1.5배였고 항해술 또한 로마는 순선을 1자로 전열을 맞추는 것조차 잘 못하고 있었지만 로마는 새로이 개발한 까마귀라는 것을 사용하여 접근전을 펴 육군 백병전 하듯이 하여 카르타고 해군을 박살을 냈다. 1차전에서 카르타고 해군은 3분의1을 잃었다.  

지휘관 운용 비교

   로마는 원로원에서 집정관을 결정하고 지명된 집정관에게 군인과 모든 결정권과 책임을 주고 보낸다. 그런데 전쟁의 결과를 묻는 방식에서도 카르타고와 로마가 차이가 난다. 카르타고는 전쟁 패전의 책임을 물어 3명의 지휘관을 죽이지만 로마는 패전의 책임을 묻지 않았다. 오리혀 적에게 포로로 붙잡혔던 사람이나 사고 책임자에게 다시 지휘를 맡기기도 했다. 이것은 한번 실수를 저지른 사람은 그 실수에서 틀림없이 교훈을 얻었으리라는게 그이유니까 재미있다. 

 

포에니 1차전쟁 결과

   포에니 1차 전쟁은 기원전 264년부터 시작하여 23년간 지속되었고 그 결과 카르타고는 400년간 쌓아온 기득권을 시칠리아 섬에서 송두리째 잃게 된다. 즉 지중해 서쪽 바다를 완전히 잃게 된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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